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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실종된 전쟁
리비우스 | 추천 (0) | 조회 (780)

2026-03-12 16:30:26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라고 썼습니다. 전쟁은 정치적 목적을 위한 도구라는 뜻이죠. 전세계 육군 사관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인데 이 명제를 뒤집어 정치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이틀 전,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스탠퍼드 프리먼 스포글리 연구소 소장이자 바이든 행정부의 전 국방부 정책차관 콜린 칼의 기고문이 올라왔습니다. 제목은 단순했죠. "이란에서의 엔드게임은 무엇인가?"

 

칼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성과를 인정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하메네이가 제거됐고, 혁명수비대 지휘부가 타격받았으며, 이란의 미사일 발사대와 드론 재고, 해군 전력이 상당 부분 파괴됐습니다. 누구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의심할 수 없죠. 하지만, 그는 명확한 정치적 목표 없이 시작된 전쟁은 결코 좋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거듭 경고합니다. 

 

이번 공습의 명분 중 하나는 이란의 핵 임계점 돌파 저지였습니다. 나탄즈와 포르도의 농축 시설을 폭격했고, 테헤란 인근의 민자데헤이처럼 핵무기 조립에 필요한 핵심 부품을 제작하던 비밀 거점까지 정밀 타격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SPND(방위혁신연구소) 등 무기화 연구를 담당하던 기관의 수장들이 제거되었죠. 미사일 생산 시설과 발사대가 파괴됐습니다. 하드웨어 타격이라는 측면에서 공습은 분명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핵무기는 고농축 우라늄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기폭 장치, 탄두 소형화 기술, 투발 수단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하드웨어가 상당 부분 파괴된 이상, 지금 당장 이란이 핵무기를 조립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고농축우라늄의 행방입니다.

 

지난해 6월 IAEA는 이란이 60% 농축 우라늄을 400킬로그램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핵무기 약 10개 분량이죠. 이 숫자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핵무기 제조에서 가장 길고 어려운 공정은 농축입니다. 천연 우라늄에서 60%까지 끌어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60%에서 무기급(90%)으로 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압도적으로 깁니다. 400킬로그램은 이미 그 가장 힘든 단계를 통과한 물질이죠. 숙련된 팀이라면 이것을 무기급으로 처리하는 데 몇 주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공습 이후 IAEA는 이 고농축우라늄의 규모와 소재를 더 이상 확인할 수 없게 됐습니다.  

 

공습이 내세웠던 명분처럼 핵 임계점 돌파를 저지하려면 두 가지가 동시에 충족돼야 합니다. 핵시설 파괴로 미래의 농축 능력을 제거하는 것, 그리고 이미 존재하는 핵물질을 확보하거나 파괴하는 것이죠. 공습은 전자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후자는 실패했거나 확인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핵무기 설계 지식은 시설을 폭격한다고 파괴되지 않습니다. 설계 도면과 기술 데이터는 사람의 머릿속과 분산된 저장소에 존재하죠.

 

트럼프가 종전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철수한다면, 이란은 반드시 핵 시설을 재건할 겁니다. 재건에는 수년이 걸리겠지만 이미 이란의 손에는 핵무기 10개 분량의 고농축우라늄이 있고, 머릿속에는 지식이 있습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고, 핵을 포기한 리비아의 카다피는 서방의 개입으로 최후를 맞았습니다. 두 나라의 케이스는 이란 강경파가 수없이 인용해온 역사적 사례입니다. 

 

이번 공습 이전까지 이란 내부에는 핵무장의 필요성을 둘러싼 논쟁이 존재했습니다. 개혁파는 핵을 외교적 레버리지로만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강경파는 완전한 무기화만이 체제를 보장한다고 주장했죠. 알리 하메네이는 이슬람 율령인 파트와로 혁명수비대 강경파들의 핵무기 개발을 금지시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그를 제거함으로써 핵무기 개발에 장애물이 없어진 상태입니다. 3월 8일 최고종교지도자로 추대된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아버지보다 핵무기에 우호적이고 혁명수비대와 밀접한 강성 인물로 알려져 있는 만큼, 미군이 철수하면 핵 개발을 재개하고 핵무기 완성까지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핵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시작된 전쟁이, 이란으로 하여금 핵무장을 포기할 수 없는 명분을 만들어준 셈입니다. 

 

칼이 지적한 두 번째 역설은, 미국이 군사적으로 과도하게 확장되고 (무기가) 고갈되고 전열에서 이탈함으로써 향후 몇 년 동안 중국과 러시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진 상태에서 이 전쟁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전쟁 개전 첫 이틀 만에 미 국방부는 56억 달러어치의 탄약을 소진했습니다. 이 수치는 국방부가 의회에 직접 제출한 추정치로, 워싱턴포스트가 3월 9일 3명의 정부 관리를 인용해 최초 보도했습니다. 합참의장 댄 케인은 전쟁 전부터 고강도 중동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핵심 군수 비축량이 고갈돼 중국·러시아의 공세를 억지하는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죠. 

 

CSIS 분석에 따르면 2025년과 2026년 교전에서 미국은 전체 사드(THAAD) 재고의 최대 30~50%를 이미 소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패트리엇 PAC-3의 경우, 미 육군의 자체 목표 재고 대비 실제 보유량은 25% 수준에 불과합니다. SM-3 역시 전체 재고의 약 20%가 소진됐습니다. 스팀슨센터의 켈리 그리에코 선임연구원은 지금의 요격 속도가 유지될 경우 4~5주 안에 전체 요격 미사일 재고의 절반이 소모될 수 있다고 경고했죠. 헤리티지재단의 1월 보고서는 더 직접적입니다. SM-3, SM-6, PAC-3, THAAD 같은 고성능 요격 미사일은 중국 인민해방군 수준의 대규모 공격에 며칠, 혹은 두세 차례의 집중 포격만으로 바닥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비용 구조도 지속 불가능합니다. 수만 달러짜리 이란 드론을 400만 달러짜리 패트리엇으로 요격하는 이 방식은 이란이 처음부터 설계한 소모전입니다. 이란은 미국을 정면으로 이길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자원을 소진하게 만들면 됩니다.

 

트럼프가 종전 선언을 하고 발을 뺀다면 즉각적인 전략적 손실은 걸프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걸프 질서의 근간은 수십 년간 하나의 전제 위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미국이 이란에 맞서 걸프 국가들을 지켜준다는 것이었죠.

 

이번 전쟁은 그 전제를 뒤흔들었습니다. 이란은 사우디, UAE,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등 GCC 6개국 전체를 미사일과 드론으로 타격했죠. 두바이 인근 호텔에 불이 붙었고, 사우디 최대 정유시설이 가동을 멈췄습니다. 

 

걸프 국가들의 반응은 이미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쟁 전 사우디, UAE, 카타르는 자국 영토와 영공을 대이란 공격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미국을 막았습니다. 이란의 보복이 자국에 떨어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그렇게 됐습니다. 카네기 재단의 앤드류 레버는 이 상황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걸프 국가들의 시민들은 자국이 미군을 주둔시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이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이유를 묻기 시작할 것이다."

 

알자지라의 분석은 더욱 명확합니다. 걸프 국가들은 미국과 군사적으로 협력하면서도 과도한 단일 의존을 피하기 위해 경제적/외교적 선택지를 넓히는, 즉 미국과 안보 협력은 유지하되 전략적 다각화를 추구하는 패턴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이미 중국이 2023년 사우디-이란 화해를 중재했다는 사실은 그 방향이 어디인지를 가리킵니다. 미국의 일방적 종전 선언은 이 흐름을 확정짓는 계기가 될 수 있죠.

 

장기적인 손실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의회 표결도, 유엔 승인도, 공개적인 정보 제시도 없이 이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올해 들어 미국은 베네수엘라와 이란에 대해 두 차례의 군사작전을 법적 근거 없이 수행했죠. 이라크전 당시 부시 행정부는 최소한 의회를 설득하고 유엔에서 정보를 제시했습니다. 그 과정이 결함투성이였어도 적어도 절차의 외양은 유지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마저도 없었죠.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법적 절차를 건너뛰며 공습을 강행한 것은, 미국이 수십 년간 쌓아올린 '예측 가능한 패권'이라는 가장 값비싼 소프트파워 자산을 단 몇 시간의 작전과 맞바꾼 것과 다름없습니다. 세계는 미국의 변덕을 두려워하며 각자의 생존 전략을 짜기 시작하겠죠.

 

미국이 지금 무너뜨리는 규범은 앞으로 러시아가 이웃 나라를 침공하거나 중국이 대만으로 향할 때 미국이 강제할 수 없는 규범이 됩니다. 패권국의 힘은 강제하는 하드파워와 따르게 만드는 소프트파워로 구성됩니다. 후자는 규범을 스스로 지킬 때만 작동하죠.

 

정치가 실종된 자리에서 전쟁은 자기강화 메커니즘을 작동시킵니다. 전술적 성공은 '다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낳습니다. 전술적 실패는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는 정당화 논리가 됩니다. 작전 범위는 확장되고, 타임라인은 늘어나며, 원래의 명분은 배경으로 사라집니다. 이란의 핵물질은 감시망 밖으로 밀려났고, 모즈타바 체제는 핵무장을 생존의 필수로 내면화했으며, 전쟁은 진행 중입니다.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명제가 뒤집히면 이렇게 됩니다. 전쟁이 정치를 집어삼킨다. 이란 전쟁의 현재 상황이 정확히 그렇죠.

 

* 아래는 콜린 칼이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의 링크입니다.

 

https://www.foreignaffairs.com/iran/what-endgam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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