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문·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나랏말씀을 한국어로 애기하고 그 뜻을 표기할 문자를 세종대왕님이 만들어서 훈민정음 창제후 40년~45년이 지나면 조선변방의 군인들까지
한글을 썻던 것으로 나신걸 한글편지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jhleetck1/223144960970
「나신걸 한글편지」는 조선 초기 군관(軍官) 나신걸(羅臣傑, 1461~1524)이 아내 신창맹씨(新昌孟氏)에게 한글로 써서 보낸 편지 2장이다. 2011년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에 있던 조선 시대 신창맹씨 묘안 피장자의 머리맡에서 여러 번 접힌 상태로 발견되었다.
* 나신걸은 조상대대로 무관직(武官職)을 역임한 집안 출신으로, 편지를 썼을 당시 그는 함경도에서 하급 군관으로 근무하고 있었음. 그의 부인 신창맹씨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은 저고리, 바지 등 의복 28점, 한글편지를 포함해 13점의 유물 등 총 41점 이상에 달함
편지의 제작시기는 내용 중 1470~1498년 동안 쓰인 함경도의 옛 지명인 ‘영안도(永安道)’라는 말이 보이는 점, 나신걸이 함경도에서 군관 생활을 한 시기가 1490년대라는 점을 통해 이 때 작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편지는 아래, 위, 좌우에 걸쳐 빼곡히 채워 썼으며, 주된 내용은 어머니와 자녀들에 대한 그리움, 철릭(조선 시대 무관이 입던 공식의복) 등 필요한 의복을 보내주고, 농사일을 잘 챙기며 소소한 가정사를 살펴봐 달라는 부탁이다.
이 편지가 1490년대에 쓰였음을 감안하면,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불과 45년이 지난 시점에서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지역과 하급관리에게까지 한글이 널리 보급되었던 실상을 알 수 있다. 특히 조선 시대에 한글이 여성 중심의 글이었다고 인식되었던 것과 달리, 하급 무관 나신걸이 유려하고 막힘없이 쓴 것을 보면, 조선 초기부터 남성들 역시 한글을 익숙하게 사용했음을 보여 준다.
안부 그지 없이 수 없이 하오. 집으로 가 어머님께 안부드리며 반갑게 보고 가고자 하였는데 장군께서 혼자 가시며 나는 못가게 하시니 다녀가지 못하였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 있겠소만 내가 얽매여 있다보니 내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것일세.
가지 말라고 하는 명을 어기고 다녀가게 되면 병조에서 회덕골로 행하여 날 잡아다가 귀향을 보낼 것이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 있겠소. 그래서 다녀 가지 못하고 영안으로 경성을 거쳐가니 내가 입을 겹철릭을 보내주시오. 그곳은 가면 가는 백포와 명주는 흔하고 무명이 귀하다고 하기에 관원들이 다 무명을 산다고 하여 무명 겹철릭과 무명 단철릭을 입으려 하니 내 옷을 많이 하여 설을 쇠지 말고 경성으로 보내주시오.
옷을 미쳐 짓지 못할 것 같으면 무명을 많이 보내 주시오. 양쪽 끝을 뚫어 보내 주시오. 무명옷이 있으면 모를까 옷을 지어 입지 못하여 민망할까 혹시 모르니 함께 보내 주시오. (옷감의) 길이는 한 자로 하여 주시고 모자라지 않게 주시오. 현지에 구실아치로 올 형님께 내어다 주시라 하여 구실올 때 가져왔다가 공세란박 틈에 댁께서 챙겨 두었다가 주고 돌아가라 하시오. 빨리 해다가 주시오.
또 골에서 불러 제역을 주려하면 채접하여 주시고 원님을 모시게 하여 자세히 차려 받들라 하시오. 또 녹송이 오갈 것이니 녹송이더러 물어 보아 그 옷을 답례로 주고 제역을 녹송이가 맡으라고 하시오. 녹송이 그 옷을 받아 답하거든 골로 가는 길에 건네보라고 하시오. 위□□□……
쓰임이 있는 곳에 다 나누어 주고 마음에 두지 마시오. 내가 □한 철릭을 보내시오. 내 흰 간사철릭 깃도 주시오. 그 새옷을 복경이에게 입혀가니 또 가래질할 떼에 그 새줄을 봐 도옥하라고 하시오.
논에 가래질 다 하거든 함부로 소를 부리지 마시오. 꼭 불러들여 이르시오. 영동으로 가는 길의 우리 논 옆에 사는 경성군관이 다음 달 열흘 쯤에 오가고자 한다니 그 군관과 함께 들어오라 하시오. 그 군관은 이름이 현종이라 하니 내 삼배 철릭과 모시 철릭을 성함을 물어 보내주시오.
또 분□과 바늘 여섯 쌈을 보내오. 집에 다녀가지 못하여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 있을까 하며 울고 가오.
어머님과 아기 잘 보살피며 있으시오. 올해에는 나오고자 하오. 또 다랑이 순 미리 한 논에 씨 열 말, 이필소네 논에 씨 일곱 말, 손당명의 논에 씨 한 말, 소 □니한 논에 씨 한 말, 묵혀 두던 논에 씨 한말, 어머니 집의 논에 씨 여덟 말, 종도리한 논에 씨 여덟 말, 즌고래 논에 씨 열 말, 두날 구레밭에 피씨 너말, 뭇구레에 피씨 너말, 삼밭에 피씨 한 말, 아래맡에 피씨 한 말, 단□자 하던 밭에 비씨 서 말, 어섯□밭에 씨 서 말을 함께 마련하여 보내□□□…